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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추자도 눈물의 섬

by 글사랑꽃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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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추자도를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완도 여객터미널, 두 번째 해남 우수영 터미널
세 번째 제주 연안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어요
저는 제주항에서 출발하여 9시 30분 퀸스타 2호 고속페리를 타고
1시간 10분 걸려 추자도에 도착했어요

이 배는 당일 16시 30분 추자도를 떠나는데
저는 일박 이일을 머물러서 그 다음 날 아침 9시 10분 배를 타고 나왔습니다
추자도에서는 개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저는 910번 버스를 애용했어요
대서리 추자항에서 정시에 출발하여 예초리 종점까지 운행을 합니다
운행 간격은 한 시간마다 있어요
저의 여행 동선은 민박집에 먼저 짐을 두고
상추자도부터 걸어서 둘러보았어요
나바론 하늘길 2.1킬로미터를 걸으며 용둠벙을 보고
봉골레 산을 바라보며
걸어서 추자등대에서 내려와 영흥리
벽화마을을 보고 내려왔어요
점심 식사를 한 후
면사무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하추자도를 갔어요
묵리, 신양2리, 신양항, 모진이 해수욕장을 거쳐 예초항 종점에서 내렸어요
하추자도를 다 보고 숙소인 상추자도로 와서
면사무소 뒤에 있는 추자초등학교, 최영장군 사당
추자성당, 대서리 벽화골목을 봤어요
이곳은 대서리 문화공연장 앞으로 추자도 굴비분수입니다
추자도는 굴비가 유명하여 조기 어장이 남하하여

추자도 인근에 어장이 형성되었고
매년 7월에 참굴비 대축제가 열린데요
제가 도착한 날은 어버이날 다음 날이어서
부녀회와 청년회에서 경로잔치를 해 드리는데 음식도 푸짐하게 차리고
재미있고 즐겁게 진행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추자도의 비경 첫번째로 나바론 하늘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대서리 소재 속칭 용둠벙에서 돌산 큰산 및 등대전망대로 이어지는

능선의 바닷쪽 경사면을 나바론 절벽이라고 해요
이곳은 후포항으로서 갯바당잡이 체험 어장으로 참치 양식장이었는데
벨라벤 태풍 때 없어졌다고 합니다
나바론 하늘길과 용둠벙 가는 길이 있는데
용둠벙을 먼저 가봤어요
용둠벙이란 '용이 노는 웅덩이'라는 뜻으로
마치 용이 승천하면서
신비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장소래요
이곳 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날카로운 절벽 등
천혜의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고
나바론 하늘길도
이곳에 올라서 봐야 한 눈에 볼 수가 있답니다
나바론 절벽은 추자도에 낚시 온 외지인들이
이곳의 절벽이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나바론 요새'에 나오는 절벽처럼 험하다고 해서
나바론 절벽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나바론 절벽길을 걸으니 오른쪽은 절벽 낭떠러지예요
말 머리 형상이 나오는데
바위 모양이 진짜 말과 똑같이 생겼어요
앞에 멀리 보이는 산은 봉골레 산으로 85.5미터로
상추자도를 대표하는 산입니다
상추자항 모습과 인근
마을 모습이 자세히 잘 보이고 있습니다
추자도의 원래 이름은 고려시대 '후풍도'로 불렸으며
순풍을 기다린다는 뜻이에요
육지와 제주의 중간에 위치해서 바람이 거칠어지면
피할 데 없는 배들의 피난처였다고 합니다
나바론 절벽 길 중간에 정자가 있어서 앉아서
쉬니 아주 시원해서 땀도 식히고 전망이 너무 좋네요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파란 바다를 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상추자도의 면적은 1.3제곱킬로미터이고
하추자도의 면적은 4.15제곱킬로미터로
하추자도가 더 넓어요
면사무소는 상추자도에 있고
하나 뿐인 중학교는 하추자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부속 유인도로는 황간도와 추포도가 있고 이 두 곳 섬의
주민은 합해서 20명 정도 사는데 가파른 지형 탓에
주민들이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섬을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저수지가 있고 내리막길 계단이 나오는데
바로 오른쪽은 절벽이고
계단 폭은 두 사람도 아닌 딱 한 사람
내려갈 좁은 폭의 계단이어서 내려오는데
정말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너무 무서웠어요
'바로 이게 천길 낭떠러지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려온 길을 뒤돌아보니 바라보기만 해도 무섭고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힘들겠더라고요
정상에는 참굴비상이 있어요
굴비로 유명한 영광군도 현재 추자도
인근에서 조기를 잡아 굴비를 만든다고 합니다
코끼리바위상이 있다고 하여서
앞에 보이는 큰 바위를 자세히 보니 눈이 보이고
코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딱 코끼리처럼 생긴 바위 입니다
추자도 주변에는 38개의 무인도 섬이 있어요
섬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드디어 하얀 추자등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추자 등대 옆길에서
영흥리 마을 가는 길로 내려왔어요
내려오다 보니 박씨처사각이 있는데
조선 중기 추자도에 유배와서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주고
불교 교리를 가르쳐 준 처사박인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사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영흥리 벽화골목 쪽으로 내려왔는데
구석구석 예쁜 아트타일로 붙인
아름다운 벽화골목으로 느리게 걸으며 보면
힐링이 되고 좋습니다
추자도 올레길은 모두 17.7킬로미터여서
다 둘러보려면 6시간에서 8시간이 걸려요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결항할 때가 많아
추자도는 '바람이 허락한 섬'이라고도 불러요
벽화마을을 다 보고 문화공연장 광장으로
다시 내려와 버스를 타고 하추자도로 갔습니다
추자대교를 건너고 있는데 이 다리는 1993년 4월 11일
추자대교가 붕괴되면서 다리를 건너던 15톤 트럭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서
다시 새로 건설한 대교입니다
예초항 종점에서 내려 황경한의 묘와
눈물의 십자가를 보러 가는 길에
들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이 길은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성지 순례하는 길입니다
지금부터 추자도가 눈물의 섬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801년에 일어난 황사영 백서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은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중국 북경에 머물고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신유박해의 전말을 알리고
조선의 상황을 흰 비단천에 기록해 보내려고 했는데
발각이 되어 처형당했어요
그리고 결혼 후 십 년만에 귀하게 얻은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은 평생 노비로 살게 하고
아내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어요
정난주 마리아는 다산정약용의 조카로 정약용 큰형인 정약현의 딸이랍니다
정난주는 제주도로 귀양가다가 아들이 평생 대역 죄인의 아들

노비로 살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배가 추자도에 다다를 무렵
나졸과 뱃사공에게 미리 준비한 패물을 주고
애원하여 관가에는 (아들이)배멀미와 겨울바다
찬바람에 죽어 바닷물에 던졌다라고 보고해 주기를 부탁했어요
그리고 아들의 배냇저고리 동정에 아기 이름과 내력을 적은 헝겊을 붙여주고
하추자도 예초리 해안가에 두살 난
아들을 내려놓고 떠나면서 엄마는 기절했다고 합니다
고기 잡고 귀가하던 예초리 주민인 오씨가 아기를 발견하여 데리고 가 길러서
그 동정에서 쪽지를 발견하여 아기 이름을 그대로 불러준 덕분에
황사영의 아들 황경한으로 살 수 있었어요
황경한은 자신의 내력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여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결혼을 안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황경한은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제주 섬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에 묻혔어요
황경한 무덤 내에는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제대도 있고
피에타 조각상도 있습니다
정난주가 아들을 안고 있는 동상입니다
멀리 제주도를 바라보면서 황경한이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그 마음을 생각하니 저도 마음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황경한 무덤은 고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다녀가셨다고 합니다
내려오다 보니 '황경한의 눈물샘'이 있습니다
이곳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애끓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황경한의 눈물로써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대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동적이고
애틋한 사연은 이곳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황경한의 무덤을 참배하고 내려와서 눈물의 십자가를 보러 반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정난주마리아는 제주 하북항에 도착하여 약 100여리를 걸어 모슬포
대정현에서 관노비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현령이던 김석구는 김상집이란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재혼한 부인이 잘 돌보지 않아 정난주에게 맡겨 키우며 돌보게 하였고
양아들로 키운 김상집은 친어머니처럼 잘 따랐대요
정난주의 인품과 교양, 학식이 높아 나중에는 한양아줌마, 한양할머니로 모두들 불렀어요
평생 추자도에 남겨진 아들을 못 보고 그리워하다가
38년간 노비 생활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어요
돌아가셨을 때 김상집이 황경한에게 서한을 보내
대부인 정씨가 돌아가셨다고 보냈답니다
그 서한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어요
김상집은 정난주의 묘를 김씨 가문의 선산에 모시고
잘 돌봐줄 것을 유언하여
그 후손들이 정성껏 돌보고 있답니다
가로 3미터, 높이 5.5미터의 눈물의 십자가는 정난주
마리아의 눈물이 십자에 맺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표현했고
두 살 난 아기 황경한 조형물은 묵주를 손에 쥐고
누워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갓난아기를 아무도 없는 추자도 해변가에 내려놓고 갈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때의 정난주 엄마 마음으로 감정이입을 해보니 저도 너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추자도는 눈물의 섬이 되었어요
제주에서 처음으로 천주교가 뿌리를 내린 것이 추자도이며
추자도는 목숨으로 지켜낸 한국 천주교 역사의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예초항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상추자도로 나갔습니다
추자대교를 다시 건너고 있습니다
예초항에서 상추자도(추자항)까지는 이십 분 걸립니다
상추자도 면사무소에서 내려 최영장군 사당을 찾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길은 제주 올레 18-1코스입니다 추자초등학교가 있는데
너무 아름답고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최영장군 사당은 고려 후기에  명장인 최영장군을 기리는 곳이에요
공민왕 21년 1372 년 제주도에서 말을 기르던 몽고인(목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제주 목사를 살해하는 등 저항하는 일이 있었어요
이에 최영은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제주도를 오가던 중에
거센 풍랑을 만나 추자도로 대피하셨어요
이때 최영장군은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추자도 주민들에게
그물로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었어요
이것이 추자도 주민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와 
이후 주민들은 최영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사당을 지었고
해마다 추자면 대서리 어촌계에서는 풍어를 기원하여
최영장군 사당제를 지내고 있어요
이곳은 대서리 벽화골목으로 추자10경을 담은 벽화가 있어요
대서리 벽화마을 옆에는 천주교 성당이 있는데
지금은 공소예요(주민들은 추자성당이라고 부름)
성당 안에는 스테인드글라스에 황경한의 스토리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굴 안에서 황사영이 백서를 쓰는 모습
붙잡혀 참형을 당하는 모습, 어머니가 유배가는 모습,

아들을 추자도에 내려놓는 모습, 오씨 노인이 거두는 모습
황경한이 어머니가 그리워서 제주도 방향으로 서서 바라보는 모습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당을 나오니 저녁 여섯 시가 되어 성당에서 종이 칩니다
그 종소리가 너무도 맑고
엄숙하고 장중하여 저는 숙연해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네요
정난주 마리아와 황경한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시간이 더 있으면 이외에 추자도
명소로는 하추자도에 있는 돈대산이나
대왕산을 올라가시면 좋습니다
저는 그린 민박에서 일박을 했는데 깨끗하고 좋았어요

2인 기준, 2끼 식사를 주고 일박에 십 만원 입니다
저녁 식사는 그린 민박집에서 운영하는 황금성 식당에서
집밥처럼 고등어 생선구이를 먹었어요
이튿날 아홉시 십 분 산타 모니카 배를 타고 추자도를 떠났는데
올 때 탄 퀸스타2호보다 배가 더 크고
속도가 빨라 제주항까지는 오십 분 걸리더라고요
이번 여행을 통해 추자도의 눈물나는 역사도 알고
아름다운 경치도 봐서 뜻깊은 여행이었어요
다음에도 추자도 섬은 또 한 번 오고 싶은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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